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엘리자베스 1세(1533~1603)

by 벳엔터 2021. 10. 24.

영국 절대왕정의 전성기를 이룬 잉글랜드 여왕(재위1558~1603) 엘리자베스 1세는 영국 국교회를 국교로 확립하고 대륙의 로마카톨릭 국가들과 오랫동안 전쟁을 피했다. 당시 잉글랜드의 함대가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격파한 이후로 잉글랜드 상인과 선원은 전 세계에서 에스파냐에 도전했다. 또 경제가 번창하는 한편 궁정은 시인, 음악가, 학자들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래서 그의 통치 시기를 종종 황금기 또는 엘리자베스 시대라고 부른다.

젊은시절

엘리자베스는 헨리8세와 앤 불린의 딸로 런던 근처의 그리니치에서 태어났다. 1547년에 헨리 8세가 죽자 이복동생이자 신교도인 에드워드 6세가 왕위를 계슥했다. 1533년에 에드워드 6세가 죽자 엘리자베스의 이복자매인 메리 튜더가 여왕이 되었다. 카톨릭신자인 메리1세는 카톨릭을 국교로 만들려고 신교도를 처형해 피의 메리라고 불렸다.

 

메리 1세는 왕위를 계승할 엘리자베스를 믿지 못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는 메리1세가 통치하는 동안 정치에 연루되지 않도록 조심스레 행동했다. 그러나 와이어트의 반란 직후인 1554년 메리 1세의 의심을 샀다. 반란 세력은 메리 1세를 타도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엘리자베스는 음모에 연루되었다는 증거가 없었지만 한동안 런던탑에 갇혔다. 1558년 메리1세가 죽자 신교도인 엘리자베스가 왕위에 올랐다.

 

국내와 대외 문제

엘리자베스 1세는 즉위 초에 많은 국내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메리1세가 재위 중에 벌인 프랑스와의 전쟁이 계속되었다. 또, 스코틀랜드, 프랑스, 네덜란드의 신교 세력이 엘리자베스 1세에게 원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잉글랜드의 경제상황은 나빴으며, 국고 수입은 정부의 일반 업무의 비용을 지원하기에도 부족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영국을 카톨릭국가로 할 것인지 신교국가로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또 그러한 결정으로 반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의회와 자문관 윌리엄 세실의 도움을 받아 프랑스와 전쟁을 끝냈다. 또한 스코틀랜드의 신교도에게 비밀리에 돈과 무기를 보냈다. 엘리자베스 1세는 프로테스탄트교회를 확립해 대다수 백성을 만족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1559년의 수장법으로 헨리 8세가 세웠으나 메리 1세가 폐지하려고 한 영국 국교회를 재확립했다. 영국 국교회는 로마카톨릭교회에서 독립했으나 교리는 카톨릭과 유사했다. 통일법으로 새로운 기도서를 승인하고 강제로 사용하도록 규정했다.

 

엘리자베스 1세는 결혼하지 않으면서 독신 상태를 외교정책의 도구로 이용했다. 신교도와 결혼을 피함으로써 카톨릭교도인 백성은 거의 예외없이 충성을 다했다. 또한 카톨릭교도 구혼자들에게도 여지를 남겨 카톨릭교도인 에스파냐 왕 펠리페 2세가 수년 동안 군사 행동을 못하게 했다. 그러는 동안 영국국교회는 민중의 지지를 확보해 갔다.

 

스코틀랜드의 메리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사촌인 메리 스튜어트는 1576년 스코틀랜드 여왕 자리에서 퇴위당했다. 메리가 잉글랜드로 도망가면서 잉글랜드에서는 큰 문제가 생겼다, 메리는 카톨릭교도이며 잉글랜드의 왕위 계승자였다. 잉글랜드인은 메리가 엘리자베스 1세를 제거하지 않을까 염려했다. 카톨릭 귀족이 가담한 엘리자베스 1세에 대한 음모가 실패로 끝났다. 1584년에 잉글랜드 귀족은 여왕을 보호하려는 결사를 맺고 카톨릭교도의 왕위 계승을 막기로 맹세했다. 1586년에 메리는 또 다른 반反엘리자베스 음모에 연루되었다, 메리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험악해지자 엘리자베스 1세는 1587년 메리를 처형하는데 동의했다.

 

에스파냐 무적함대

1586년에 엘리자베스 1세는 에스파냐의 지배에 대항하는 네덜란드의 신교도를 돕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 또, 잉글랜드 배들이 에스파냐의 배를 약탈하도록 조장했다. 드레이크, 롤리를 비롯한 해적들이 에스파냐 선박을 마구 약탈했다. 1587년에 드레이크는 카디스 항에서 30척의 에스파냐 배를 난파시켰다. 이러한 사건과 메리 스튜어트의 처형으로 에스파냐 왕 펠리페 2세는 잉글랜드 침공을 승인했다.

1588년에 펠리페 2세는 무적함대를 잉글랜드로 파견했다. 그러나 무적함대보다 작고 움직임이 빠른 잉글랜드 배들은 에스파냐 함대를 궤멸시켰다. 거기다 강한 폭풍까지 불어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해안으로 도주하던 많은 에스파냐 선박이 좌초되었다. 에스파냐의 세력은 크게 꺽였지만 전쟁은 그 후로도 16년 동안 계속되었다.

 

만년

엘리자베스 1세 치세 말엽에는 아일랜드인이 반란을 일으켰고 경제가 어려워졌다. 에식스 백작은 엘리자베스 1세의 마음을 끌었으나 권력에 대한 야망이 좌절되자 1601년에 반란을 주도했다. 에식스 백작은 곧 붙잡혀 반역죄로 처형되었다. 엘리자베스 1세를 이어 메리 스튜어트의 신교도 아들인 제임스 1세가 즉위했다.

 

 

댓글